"여보세요? 내일 오전 11시까지 모둠초밥 15개짜리 30세트 포장 가능한가요?"
올 초에 아내가 주문 전화를 받았는데 가게 오픈 직전에 30세트 포장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였다. 이런 단체 주문은 처음이라 고민이 되었다. 언제부터 준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30 세트면 평소 점심시간대의 매출 정도가 되는 큰 주문이다. 아내는 나보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자기는 초밥을 안 싸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아무튼 아내는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만 불어넣어주고 곧바로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날 11시까지 포장을 해주겠다고 했다. 사실 나도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은 했었다. 단지 내 저질체력이 버텨줄지가 걱정일 뿐.
대략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해보니, 어림잡아도 새벽 4시부터는 작업을 시작해야 오전 11시까지 단체 포장을 마무리 짓고 점심 장사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자게 된다면 제시간에 못 일어날 것 같아서 아내 허락을 받아 침낭을 들고 가게로 왔다.
다음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동안 못 봤던 TV를 보려고 해도 쉽사리 켜지도 못하고- 바로 불을 끄고 뜨뜻한 가게 평상에 침낭-무려 10년 전 호주 생활 때 쓰던 침낭이다!-을 깔고 몸을 눕혔다. 알람도 5분 간격으로 계속 울리도록 맞춰 놓았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잠을 청해봤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는 않았다. 비슷한 기분을 추억 속에서 뒤져봤는데 어렸을 적 소풍 전날 잠 못 이루던 때와 매치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불안감도 있지만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뒤척이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고 몇 번을 뒤척이다가 겨우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내 관절과 세포들에게 인사를 하고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웠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보다 장사를 하는 지금이 컵라면을 더 많이 사 먹는 것 같다.
눈은 계속 감겼지만 내 손과 발은 익숙한 주방을 돌아다니며 쌀을 씻고 식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비몽사몽이지만 모든 과정을 기억하고 움직여 주는 내 관절들이 대견했다.
정신없이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가게 앞에는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오는 출근차량들과 유치원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 엄마들의 풍경이 눈에 보였다. 나는 넋 놓고 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 차리고 서둘러 초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밥이 떨어지면 다시 밥을 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오른손은 하얗게 불어 있었고 잠을 충분히 못 자서 그런지 정신은 아득해져 갔다. 그 사이 아내가 가게로 와서 샐러드와 국물을 용기에 나눠 담고 포장을 했다. 11시가 되자 제시간에 딱 맞춰 손님이 도착했고 우리는 무사히 도시락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점심때 밀려드는 주문까지 쳐내고 재료와 체력 모두가 떨어지는 바람에 저녁 장사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단체주문 덕분에 하루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그 이후에도 매주 한 건 정도는 단체주문이 들어왔다. 최고로 많이 한 건 49세트였고 12시 전에 다 해냈다. 그러면서 하루 최고 매출액도 경신해 나갔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이렇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꾸준하게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부족한 실력을 노력으로 메워보자 다짐했던 처음의 마음가짐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 같다. 가장 최근인 지난주에도 단체주문이 들어와 있을 때 그 전날 침낭을 들고 가게로 향했다. 아내에게 허락받은, 유일한 외박이 가능한 날이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내 체력의 한계는 점점 보이기 시작해서 이렇게 밤을 거의 새 가며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체력이 되는 날까지는 웃으며 즐겁게 할 수 있다. 손님이 우리 가게 음식을 받아가면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는데 어떻게 안 해줄 수가 있을까. 나는 그 맛에 장사하는 거고 손님은 그 맛에 우리 가게를 찾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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